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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야간 비행

2010 런던 스탠스테드

나도 비행을 배우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럴 마음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항공무선통신사 공부를 하려고 매번 기회"만" 노리고 있다)비행 배우기는 오늘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하위권 쪽으로 많이 밀려나 있다.

 내가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는 것과 그저 승객으로 탑승하는 것은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주말에 비행기를 타면서 아쉬움을 어느 정도는 보충할 수 있다. 물론 흡족한 비행이 되려면 한 번 환승에 기내식을 도합 세 번 정도는 주는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비행기를 탈 때 심심풀이로 책을 들고 타게 되는데, AVOD나 내가 가지고 타는 미디어 플레이어들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 읽었던 책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 첫 번째 국제선에서는 "부분과 전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다음부터는 여러 가지가 얽혀서 버스터미널에서 읽은 책, 페리터미널에서 읽은 책, 기차역에서 읽은 책, 공항에서 노숙하는 도중에 읽은 책..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을 조금 뛰어넘어 최근에는 야간 비행/남방 우편기를 항상 가지고 비행기에 오른다.

괜한 분위기 탓인지 모르지만, 밤 비행기를 탈 때 야간 비행이 참 잘 읽힌다. 물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현대 에어라인 파일럿들이 당시의 우편기 조종사들과는 크게 다른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텍쥐베리 시대의 우편기 조종의 분위기를 통해서,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파타고니아 황무지의 희미한 불빛들에 대한 묘사와,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자서 스스로도 정의하지 못하고, 만족하지도 못하는 어떤 삶의 모습을 찾아 헤매고만 있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 한데 뒤섞이면서 페이지를 휙휙 넘기게 된다.

우편 회사의 책임자던지 혹은 가족이던지, 공항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 쯤 되면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의 페이지가 끝난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진 채 목표 없이 정돈되지 않은 걱정을 한참 하다가 파타고니아 빙하는 언제 보러 가나,칠레에는 뭐가 있나 하는 생각으로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난다.

매번 이렇게 읽기 - 걱정하기 -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한 주 한 주 지나가기에 무언가 글으로 생각을 정리하지 않으면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다른 책을 읽으면 다른 기분과 마음가짐으로 나갈 수 있을까.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샀다.